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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Korea Forum 뉴스레터] [제6호]청렴과 부패 이야기
작성자 : TI-Korea(ti@ti.or.kr)  작성일 : 2022-12-30   조회수 : 1140

  2023.1.2. 제6호

 

 

 

청렴과 부패 이야기

 

 

최영찬 소설가, 한국투명성기구 정책위원

 

  

 

한반도에 터잡고 산 우리 민족은 오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지만, 늘 가난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수없이 많은 외침과 재해의 고난을 딛고 지금은 부자 나라,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도 돈 문제는 끊기지 않는다. 부자 되세요! 라는 광고처럼 부자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많다. 부패도 여전하다. 일반인은 말은 많이 들었지만, 개념은 잘 모르는 것이 부패다. 어떤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다던가 어떤 은행의 직원이 은행 돈을 슬쩍했다는 말로 구체화해야 그 뜻을 안다. 비로소 그것이 부패이고 나쁘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공짜면 양잿물도 먹겠다는 속담도 있고 돈 10억을 갖는다면 징역 10년도 살겠다는 설문조사처럼 돈을 벌 수 있다면 양심에 거리낌 없이 부패를 저지르겠다는 의식도 있다. 이렇게 인생살이에서 필요한 가치인 돈에는 부패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청렴이 있다.

 

()으로 맺어진 한국인의 인간관계에서 생활 속에 부패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저지르는 부정행위는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융통성이 있다, 내가 돈을 받지 않고 단지 친구를 위해 봐줬는데 무슨 문제냐 등등 부정행위를 합리화한다. 청렴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윤리가 부족한 것이다. 부패가 나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동물적 본성이라면 청렴은 의식화된 공동체 인식이다.

 

부패와 청렴의 역사는 조선조에서부터 나타난다. 조선의 국교인 유교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함께 잘 사는 대동사회를 향한 지표이다. 여기서 수신은 개인이 먼저 예의염치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 청렴하고 곧다는 것으로 부정부패가 나쁘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는 청렴해야 한다. 그것이 양반 사대부가 지향하는 가치로 청렴하지 않으면 지탄의 대상이 된다. 유학자들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상업을 억압한 것은 상인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상도덕이라는 것도 합리적 사고를 하는 유학의 가르침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전에는 매점매석이나 속임수 상거래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경멸하는 뜻으로 상인들을 장사치라고 부른 것이다. 상업을 억제하기 위해 고액의 세금을 매겼으며 상인의 집도 나라에서 정해 놓은 크기에 맞춰 살아야 했다.

 

이러한 청렴정신은 조선 중기까지 지켜왔다. 청백리로 뽑힌 관리도 가끔 있었다. 유관 같은 이는 영의정임에도 빗물이 새는 초가집에 살았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박수량의 묘앞에는 아무 글씨도 쓰여지지 않은 비석이 있다. 그는 사후에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정도로 청렴해서 임금이 장례비를 하사하고 청렴을 기리기 위해 백비(白碑)를 세운 것이다. 경기도 광명시에 묘가 있는 오리 이원익은 키가 매우 작았으나 행정 능력이 뛰어나고 청렴해서 영의정을 오래 지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나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점차 청백리는 줄어들었고 마침내 청백리로 뽑힌 관리가 사라졌다. 청렴은 선비가 스스로 지키는 가치관이고 조정에서는 부패를 감시하는 관청을 두었다. 관리가 부패했을 때는 법에 따라 처리했다.

 

조선을 건국하고 세운 경복궁의 광화문 앞 해치(해태라고도 한다.)는 청렴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이다. 부패한 자를 보면 달려들어 외뿔로 받아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정문의 가운데로는 나라의 주인인 임금이 들어가고 양쪽 문으로는 관원의 부패를 감시하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三司)의 관리만이 드나들 수 있다. 일반 관리는 물론이고 영의정도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헌부는 지금의 검찰이고 사간원은 언론이고 홍문관은 학자들이 유학을 공부하는 곳이다. 그들이 입은 관복의 가슴 부위 흉배에 해치가 그려져 있다. 판서나 재상이 되려면 반드시 삼사의 관리를 거쳐야 한다. 청렴의 가치를 아는 관리야말로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자격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것을 보아도 조선이 청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부패 척결의 의지와 실천이 있기에 조선은 오백 년 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삼사의 관리들이 출근할 때 정문인 광화문 앞 해치와 흉배에 그려진 해치를 번갈아 보며 청렴의 의지를 다잡고 엄숙한 마음을 되새겼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본성이므로 성리학의 도덕윤리와 법적 구속이 있음에도 부정부패는 지배층에서도 근절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려온 관습이 쉽게 사라질 수 없으니 인정과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부패는 지속되었고 무속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하층 계급에서는 인간관계상 거래신용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부패는 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삼사의 엄격한 감시는 계속되었으니 관리들이 청렴해서 질서가 잡혔을 때는 나라가 발전했고 부패가 심할 때는 나라가 어지러웠다. 탐관오리가 많아졌지만 삼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광화문 앞의 해치가 눈이 멀었다고 해태 눈깔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조선을 임진왜란 전후로 나눈다면 전에는 일부 권력층의 부정부패로 임꺽정 등 도둑이 성행했으니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과 함께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 무역으로 얻는 수익이 사라졌다. 또 소빙기를 맞아 냉해로 농업을 망치는 등의 자연재해로 백성의 생활이 매우 궁핍하게 되었다. 세도가들이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가면서 굶주림이 시작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농산물이 적어졌는데 힘 있는 자들이 빼앗아가니 세상은 소수의 도둑놈과 다수의 도둑맞는 백성으로 나뉘게 되었다. 부패로 인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하고 각종 민란이 터져 나오자 암행어사 제도가 활성화되었다. 암행어사는 조정의 눈이 미치지 않는 지방을 왕을 대신한 관리가 부패를 조사하는 것이다. 암행어사는 벼슬길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관리를 임금이 은밀히 불러 임명하는 것이다. 암행어사가 동대문이나 남대문 밖에 나가서 보따리를 열어보면 어느 지역으로 가라는 서찰과 마패와 유척이 들어 있다. 마패는 역()에서 말을 빌릴 수 있는 증명서이고 유척은 곤장의 두께와 곡식의 양을 재는 됫박의 크기를 재는 용도이다. 암행어사는 자신의 행방을 가족에게 알려서도 안 되고 곧장 해당 지역을 돌아다니며 형편을 살폈다. 이것이 끝나면 어사는 역졸을 이끌고 어사출두를 외치고 창고의 문을 닫고 장부조사를 한다. 동시에 유척으로 곤장과 됫박을 재어 불법과 부정을 살핀다. 그런 다음에는 임금에게 올리는 서계(보고문)를 쓰고 서울로 돌아온다. 이러한 암행어사 제도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고을 사또의 욕심이 지나쳐서가 아니다. 나라에서 쓰는 돈이 너무 많아 백성들에게 거두는 것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도 세도정치가 나타나자 유명무실해졌다. 권력을 독점한 세도가들은 거침없이 부패했고 결과는 망국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는 백 년도 더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세계에서 열 번째로 부유한 나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갔다. 그러면 한국은 열 번째로 청렴한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고속 성장이 있었지만, 부패는 여전히 크고 강력하게 남아 있다. 부패의 폐해가 망국에 이른다는 역사적 교훈을 알고 있기에 전 세계적으로 부패추방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도 부패청산을 위해 사법당국의 끊임없는 사정활동이 있었다. 관행화된 부패문화를 청렴문화로 바꾸는 것이 비용도 절감되고 효과도 크다. 이에 한국투명성기구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의 반부패 활동이 있었다. SNS를 이용해 부패의 폐해와 청렴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다.

 

부패는 남이 보지 않는 데서 벌어진다. 그래서 흔히 간통이나 절도로 비유한다. 부패는 사법기관의 수사로 쉽게 밝힐 수 없다. 부패를 목격한 사람의 제보로 단서를 잡을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에 공분해 공익제보하는 의인들을 조직의 배신자로 몰아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어 목숨을 살리는 외과의사로 존경하자. 마지막으로 부정부패를 소재로 하는 문화콘텐츠의 활용이 필요하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웹툰에서 사회악과 대결하는 의로운 영웅들의 활약을 통해 보는 이가 공감하는 토대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갖가지 방법으로 반부패, 청렴의 가치를 전파시켜 부패의 더러운 시궁창을 청소하고,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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