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orea Forum 뉴스레터] [9호]부동산 백지신탁의 필요성과 방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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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TI-Korea(ti@ti.or.kr) 작성일 : 2023-10-06 조회수 : 847 | |
2023.10.10. 제9호
부동산 백지신탁의 필요성과 방향
박종오 한겨레신문 기자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 국회의원 등이 보유한 부동산 백지 신탁이 쟁점이 되고 있다. 기존 공직자 백지 신탁 제도의 적용 범위를 부동산까지 확대해 이해 충돌 문제가 생기는 걸 방지하자는 주장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 제14조의 4는 재산 등록 및 공개 의무가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차관을 비롯한 1급 이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보유 주식 합계액이 3천만원을 초과할 경우 2개월 이내에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회사 등 수탁기관에 주식을 신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주식과 업무 관련성이 높은 기획재정부 금융 담당과 금융위원회 4급 이상 공무원도 적용 대상이다. 공직자와 이해관계자는 신탁한 주식의 관리·운용·처분에 관여할 수 없다. 수탁기관도 신탁 계약 체결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신탁된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만약 주식을 계속 보유하려면 인사혁신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로부터 ‘직무 관련성 없는 주식’이라는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 고위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주식 거래를 하거나 주가에 영향을 미쳐 재산을 늘리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다. 문제는 현행법의 백지 신탁 대상 재산이 ‘주식’으로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고위 공직자 주식 백지 신탁제가 처음 도입된 건 2005년이다. 참여정부 당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삼성전자 주식 및 스톡옵션 보유 논란이 불거지며 주식 백지 신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제도를 부동산, 더 나아가 가상자산 등 다른 재산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백지 신탁제의 도입은 2005년 공직자윤리법 개정 당시부터 최근까지도 논의가 거듭되는 화두다. 부동산이 가계 자산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을 통한 재산 증식이 논란을 낳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 영향이 크다. 부동산 백지 신탁제 도입을 주장하는 주요 인사도 적지 않다. 국내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원 장관은 지난 2007년 국회의원 부동산 백지 신탁 도입을 주장했고, 이어 2020년에도 이를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당론으로 채택하자고 촉구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 신탁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현재 21대 국회의 행정안전위원회에도 부동산 백지 신탁 제도 도입을 뼈대로 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다수 계류돼 있다.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보유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며 2020년 민주당 신정훈, 윤재갑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이다. 신 의원 안은 백지 신탁 적용 대상을 모든 부동산과 국토부 공무원까지 확대하도록 했다. 특히 주택은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한 채만 소유할 수 있게 제한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건물, 토지 등 그 외 부동산도 인사혁신처 산하 부동산백지신탁 관리위원회가 실소유 여부를 인정해야만 계속 보유하는 게 가능하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부동산은 60일 이내에 매각 또는 백지 신탁해야 하고, 신탁 계약을 맺은 부동산도 180일 이내에 처분을 완료해야 한다. 사실상 고위 공직자 본인이 직접 거주하는 1주택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이 매각 대상이 되는 셈이다. 윤 의원 안은 실제로 거주하는 부동산 외에 직무 관련성이 없는 부동산도 매각·신탁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게 신 의원 안과 가장 큰 차이다. 이때 직무 관련성은 부동산 정보 접근성과 영향력 행사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따진다. 이처럼 부동산 백지 신탁제 도입을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 논의가 오랜 기간 진행됐으나, 실제 제도 도입과 시행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재산권 침해 논란 때문이다. 실제 해당 법 개정안들을 살펴본 정성희 국회 상임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부동산의 경우 주식과 비교해 즉각 매매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환가성이 낮고, 개인이 주관적으로 부여하는 가치가 시장 가치와 다를 수 있으며, 신탁 중 임대차 계약의 처리, 보수 등 관리 비용 부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개정안들은 기본권 침해의 정도, 최소 침해의 원칙 등의 우려 및 부동산 백지 신탁 제도 운영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함께 개정안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이해 충돌의 방지와 부동산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라는 공익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도 국회의원의 주식 백지 신탁을 의무화한 기존 공직자윤리법이 “위헌이 아니다”라고 판시하면서도 “부동산은 주식에 비하여 수탁자가 시장에서 환가하기가 용이치 않고 개인의 생존에 더 직접적인 형태로 연관되어 있어 그 처분을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더 클 수 있다”고 본 바 있다. 여기엔 반론도 많다. 정연주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지난 2021년 펴낸 ‘공직자 부동산백지신탁제에 관한 헌법적 고찰’ 논문에서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하며 공직 포기, 다른 직위로의 변경 신청 등 대안 가능성을 고려하면 (부동산 백지 신탁 제도의) 규제가 사유 재산 제도의 부정이라 보기 어렵다”면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그 추진 목적에 비춰 재산권 보장, 비례·평등의 원칙 등 헌법상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 2015년 한국공법학회 학술지 ‘공법연구’에 실린 ‘미국법상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제도에 관한 고찰’ 논문에서도 “미국은 현금,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 부동산을 백지신탁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며 “국내 고위 공직자의 재산 증식이 부동산을 통해 이뤄진 부분을 부인하기 어려운 만큼 우리도 부동산, 채권 등의 백지신탁에 관한 논의와 도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보다 원활한 제도 도입 논의를 위해서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백지 신탁 제도의 기원인 정부윤리법을 카터 행정부 시절인 1978년부터 시행한 미국은 신탁 대상인 재산의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주식, 부동산은 물론 가상자산도 백지 신탁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정부윤리법은 한국의 공직자윤리법과 달리 신탁 재산을 모두 처분하는 것을 강제하지 않고, 재산을 관리하는 금융회사의 자산 운용 독립성과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재산 백지 신탁 외에도 직무 회피, 전보 등 공직자의 이해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수단도 함께 갖추고 있다. 요컨대 제도의 유연성이 한국보다 높아 재산권 침해 소지도 적다는 의미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김형진 입법조사관(변호사)은 지난 9월 펴낸 ‘부동산·가상자산 백지 신탁 제도 도입의 전제 조건’ 보고서에서 “가상자산, 부동산 등도 백지 신탁의 대상으로 하면 이들 자산과 관련한 이해 충돌을 한층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제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는 경우 백지 신탁을 갈음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함께 제시하여 재산권 침해 우려를 최소화해야 하고, 주거용 부동산 등 일부 재산의 경우 백지 신탁 의무를 면제하는 등으로 적절히 예외를 설정하는 문제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는 국내에도 부동산 백지 신탁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재산 강제 매각 규정 외에 고위 공직자의 이해 충돌을 차단할 다른 선택지를 두거나 일부 매각의 예외를 인정해 과도한 재산권 제한이라는 반발을 최소화하자는 이야기다.
*위 기사는 필자의 의견으로 TI-Korea Forum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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