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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Korea Forum 뉴스레터] [10호]한국이 투자한 국제 개발 은행의 비리와 이해충돌, 무엇이 문제인가
작성자 : TI-Korea(ti@ti.or.kr)  작성일 : 2024-01-02   조회수 : 653

  2024.1.3. 제10호

 

 

 

'한국이 투자한 국제 개발 은행의 비리와 이해충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김지윤

 

 

우리 정부는 현재 9개 국제금융기구와 십여개 산하 기금에 매년 평균 4억 달러 가량, 우리 돈 6천억 원 정도를 출자 및 출연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통화기구와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위해 자금을 적은 금융비용의 차관의 형태로 또는 무상으로 빌려주는 다자개발은행(MDB)이 모두 국제금융기구에 포함된다. 

 

뉴스타파는 지난해부터 ‘조직범죄와 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 중미 지역 매체들과 함께 국제협업 취재팀을 꾸려 중미경제통합은행(Central American Bank for Economic Integration·CABEI)을 집중 취재해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이번에 국제협업팀이 취재한 중미경제통합은행도 중미 국가들의 경제 발전과 역내 균형 개발을 표방하며 1960년대에 설립된 다자개발은행이다.

 

이 은행은 오늘날 중미 지역 개발 재원의 절반 가량을 책임진다. 한국은 지난 2019년 국내 기업의 중미 진출을 지원할 목적으로 이 은행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모두 6억 3000만 달러를 출자해 영구이사국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이 출자하고 경영에도 참여하는 이 개발은행의 운영 실태는 심각했다.

 

문제는 중미경제통합은행이 다른 대형 개발은행보다 자금 집행 통제가 특히 약하다는 점이었다. 국제협업팀과 인터뷰한 복수의 전직 직원과 이 은행과의 협업 경험자들의 공통된 증언이 있었다. 엘살바도르 중앙준비은행의 카를로스 아세베도 전 총재는 중미경제통합은행의 운영 행태를 동아리에 비유해 꼬집었다. 잘못된 관행은 특히 최근 임기가 끝난 단테 모씨 총재 재임 시절에 더 심해졌다고 한다. 회원국 이사들은 모씨 총재 취임 후 은행이 대출 수혜국 정부가 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감독하기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관행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사들이 비판한 '새로운 관행'은 금융지원의 대상을 특정 사업이 아닌 특정 목표에 두는 식으로 구축됐다. 모씨 총재 취임 이후 중미경제통합은행은 특정 사업이 아닌 빈곤 감소와 같은 큰 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른바 '정책 기반 대출'이라는 금융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 측은 이런 대출은 지원 수혜국이 자체적으로 지원금 사용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이사들은 용처가 두루뭉술해 대출 이후 모니터링이 어렵고 쉽게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금이 각국 정부 국고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기 어렵고, 특정 사업에 대한 자금이 아니기 때문에 자금이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제협업팀은 일부 회원국 이사들 간에 오간 '정책 기반 대출' 제도가 투명성 확보가 어렵다며 도입을 비판하는 서신을 입수하기도 했다.

 

국제협업팀은 중미 지역 주민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대출된 은행 자금이 사실상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의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자를 위해 대출되고 있는 실태도 재확인했다.

 

대출 승인 절차만 허술한 것이 아니었다. 금융지원 사업의 계획과 실행 과정도 느슨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된 잘못을 은폐하려는 사례도 발견됐다.

 

국제협업팀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중미경제통합은행이 회원국에 기부한 한국산 PCR 진단키트를 조달하는 과정이 허술했다는 기록을 입수했다. 모씨 총재는 PCR 검사에 필요한 진단키트의 일부만 한국에서 발주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조달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나머지 부품을 바로 구하지 못한 것이다. 이때 일부 회원국 이사는 이 사실을 회원국에 알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모씨 총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 했다. 은행 내부 감사위원회는 이런 소동으로 팬데믹 확산의 골든타임을 놓쳐 많은 회원국 국민들의 건강에 해를 끼쳤다는 결론을 내기도 했다.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  탓에 이해충돌이 발생해도 당사자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않은 점도 확인했다.

 

우리 정부는 중미경제통합은행 회원국 최초로 단일 기부자 신탁기금을 설립하고 2020년부터 5년간 총 5000만 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 이는 출자금과는 달리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다. 대신 이 신탁기금으로 진행되는 개발 사업의 일정 비율은 공여국인 한국 국적의 기업이 우선 수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과정에서 사익을 챙긴 사람 가운데 단테 모씨 중미경제통합은행 전 총재의 고문 한국계 미국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래 미국에서 국제 개발정책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제이슨 오는 지인과 가족을 동원해 한국에서도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이 은행과 이 은행에 한국 정부가 설립한 신탁기금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따냈다. 오 씨의 미국 컨설팅 회사에서부터 함께 일한 지인 이승열은 이 은행 사업을 수행하던 이사로 재직하던 기간 한국 신탁기금 조정관으로도 재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미경제통합은행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는 중미경제통합은행 신탁기금 관리자 선정 등에 관여한 바 없으며, 신탁기금 관리·운영, 관리자 선정, 계약 체결 등의 권한은 전적으로 은행에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정부는 국제개발은행에 출자·출연금 제공을 결정하는 절차에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현행법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개발은행에 출자·출연금을 내려면 주무부처인 기재부가 국회에서 사전 의결을 받은 뒤 부처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정부 재정 여건이 어렵거나 급하게 출자를 결정해야 할 경우에는 이 사전 의결 없이 한국은행이 자금을 대납하고 국회에는 사후 보고하도록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 경우 돈은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고에서 나간다.

 

자금 집행의 투명성 문제를 제고하려면 결국 한국은행을 통한 대납 예외규정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십여년 전부터 국회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길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지난 10월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똑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실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10년 간 한국은행이 정부 대신 국제금융기구에 납입한 출자·출연금은 12조 6832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체 출자·출연금의 9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19년 9월엔 이 같은 예외규정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률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한국은행의 출자·출연금 대납이 필요할 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사전 동의를 받고, 동의를 받을 때도 자세한 출자 계획을 제출하도록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국은행이 기재부 대신 국제금융기구 출자금을 내주는 예외규정 적용이 기재부가 국회의 예산 심의를 우회하기 위한 관행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법률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을 통한 출자·출연금 납입의 사후보고 내용이 부실하며 실질적인 재정통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도 높게 지적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국회 사후 보고 조항이 있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침해되지 않고, 긴급한 출자 수요가 있을 수 있음을 들어 법 개정을 반대했다. 결국 개정안은 20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한국은행의 대납 예외규정 남용을 제어하려는 법 개정안은 2009년 제18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역시 기재부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는 “국내의 정부기금이 기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기금의 운영계획 및 결산, 회계 등이 국회에 보고되고 엄격한 통제를 받는 만큼 해외에서 진행되는 사업도 그에 준하여 국회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환수조치, 추가 출자제한 등의 지속가능하고 적절한 통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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