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orea Forum 뉴스레터] [11호]경찰과 부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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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TI-Korea(ti@ti.or.kr) 작성일 : 2024-03-29 조회수 : 583 | |
2024.4.1. 제11호
경찰과 부패
남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이철호 나들목을 빠져나가기 위해 차선을 준수하면서 주행하다 보면, 나들목 끝에서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얌체차량들이 있다. 한 두 대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체되고,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것이 통용되고 일상화되면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직장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보다는 사적 관계나 뇌물 등을 동원하는 사람이 더 먼저 승진하고 아무 일 없듯 용인되면,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여 근무하면 승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허탈감과 박탈감을 느끼며 인사 원칙을 불신하게 된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얽힌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다. 왕소군은 중국 4대 미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며, 당대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족장에게 시집보내진 불운한 여인이다. 원래 미인이었던 왕소군이 궁중화가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화첩에 못생긴 궁녀로 그려져 흉노족의 족장 호한야에게 시집보내지는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된다. 한나라는 국력이 약해 북방의 흉노족과 화친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흉노족의 족장인 호한야는 한족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 달라고 청했고, 원제(元帝)는 궁녀 중에 한 명을 택해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원제는 많은 후궁을 거느린 탓에 평소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도록 했다. 후궁으로 뽑히면 임금의 사랑을 받고 출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궁녀들은 궁중화가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며 실물보다 더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원래 절세 미녀였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면서까지 더 예쁘게 그려 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뇌물을 은근히 기대했던 화공 모연수는 그게 틀어지자 분풀이로 왕소군을 가장 못생긴 추한 궁녀로 그려놓았다. 원제(元帝)는 궁녀화첩에서 가장 못생긴 궁녀인 왕소군을 골라 흉노족 족장의 아내로 정했다. 이후 흉노족에게 보내는 궁녀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왕소군을 처음으로 직접 본 원제는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되돌릴 수 없었고, 당시 궁중화가인 묘연수는 황제를 속인 죄로 처형을 당했다. 경찰부패(警察腐敗)는 경찰공무원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또는 특정 타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경찰력을 의도적으로 오용하는 것이다. 즉 경찰공무원이 자기에게 주어진 경찰권을 부적절하게 행사하면서 돈이나 물질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받는다면 그 경찰공무원은 부패한 것이다. 경찰활동에서 호의(好意, gratuity)나 사례는 감사와 애정의 표시, 훌륭한 경찰권 행사에 대한 자발적인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동감 내지 동정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공여되는 이익의 정도는 대체로 경미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작은 사례나 호의를 묵인하게 되면 경찰관에게 사회적으로 예외적‧특권적 존재라는 의식이 형성되고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봉사자로서 공복의식(公僕意識)을 결여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큰 부패로 이어진다. 경찰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묵묵히 주어진 직무를 처리하는 경찰관이 근무실적과 능력 등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그런 경찰관이 의당 승진하는 것이다. 현실은 어떠한가? 오래전 공직사회에 인사철이 되면 ‘도장 값’이니 ‘싸인 값’이니 하는 말이 회자(膾炙)되곤 했다. 그러나 공직사회가 투명해지고, 우리 사회에 이른바 김영란법이라고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그런 단어는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2023년 가을 광주‧전남지역 경찰사회에 경찰 인사청탁 명목 금품수수 비리사건이 보도되면서 일대 충격을 주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브로커(broker)가 2021년부터 전남경찰청 인사 때마다 승진하려는 경찰들로부터 수천만원 씩 받아 지방경찰청장 최측근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뇌물 승진이 이뤄진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광주‧전남 지역의 브로커로 활약하던 A는 평소 수십여 명의 전‧현직 경찰관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거나 향응과 용돈을 제공하면서 친분을 형성‧유지하였다. 이에 현직 총경들이나 지방경찰청장인 치안감조차도 A를 형님으로 호칭하였고, A는 이를 이용하여 광주․전남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경찰 전체 승진의 50%에 달하는 심사승진의 경우, 승진 5배수 안에만 들면 주관적인 ‘적성 점수’에 의해 승진이 좌우되어, 사실상 인사권자인 지방경찰청장의 영향력이 막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사 승진구조 때문에 인사철만 되면 인사권자와의 친분을 통해 심사승진 제도를 악용하려는 승진 브로커들이 경찰 인사에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이 오고 간다는 소문이 광주‧전남지역 경찰사회에 무성하였다. 검찰은 브로커 A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이와 같은 경찰 공무원 인사비리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여, 인사권자인 지방경찰청장에게 뇌물을 공여한 현직 경찰관 3명과 브로커 3명을 구속·기소한 것을 포함해 인사 비위 관여자 총 12명을 기소하였다. 2021∼2022년 광주‧전남경찰청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던 일부 경찰 공무원들이 인사권자와 친분이 있던 A 등 브로커들을 통해, 경감 승진의 경우 1∼2,000만 원, 경정 승진의 경우 2∼3,000만 원의 뇌물을 전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뇌물이 전달된 일부 승진대상자들의 경우, 승진 심사과정에서 기존 순위가 뒤바뀌어 승진한 사실까지 확인되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인사비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또 현직 경찰관이 사건 브로커에게 실시간으로 수사정보를 제공하고, 금품을 주고받은 것도 확인되었다(광주지검 보도자료, 2024.2.14). 이는 평소 주어진 직무를 묵묵히 열과 성을 다하여 수행하던 성실한 경찰관들에게 엄청난 허탈감과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흔히들 세상에 없는 것 3가지로 공짜, 비밀, 정답을 들곤 한다. 공직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짜, 비밀이 없다. 아무 조건 없이 밥과 술을 사는 것 같이 행동하지만, 이유 없이 술 사고 밥 사는 경우는 없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밥을 사고 술을 사는 것이다. 한두 번 자리를 하면서 먹고 마시다 보면 브로커 등에게 코가 꿰고 엮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아차하고 후회하는 순간 발을 빼는 건 이미 늦는다. 세상사 무슨 일이든 한번이 어렵지, 한번 두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당연시 하게 된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브로커와 형님‧동생 하다 보면, 경계심이 풀어지고, 선을 넘게 되고, 선을 넘으면 명예 등 전부를 잃게 되는 것이 우리가 다 아는 만고의 진리이다. 앞에 든 광주‧전남 경찰 인사비리사건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모를 것이라 여기며 자리를 하게 되지만 하늘이 알고, 내가 알고, 상대방이 알고, 만남을 한 식당의 사장이 알고, 종업원이 알고, 심지어 무생물인 CCTV마저 알게 된다. 세상에 없는 세 가지 중에 두 가지가 ‘비밀’이고 ‘공짜’이다. 아직도 비밀‧공짜 그런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공직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패가망신하지 않는 길이다. 부패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첫걸음은 세상에 공짜 밥도 술도 없고, 비밀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공직세계에서의 정답은 법령을 준수하고, 주어진 권한 내에서 원리원칙을 준수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복의식(公僕意識)을 가지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인사권자이건 인사 대상자이건 중국의 왕소군(王昭君)과 모연수(毛延壽)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지만, 우리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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