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지방권력 비리와 개선방안 | |
---|---|
작성자 : TI-Korea(ti@ti.or.kr) 작성일 : 2024-12-31 조회수 : 208 | |
2025.1.2 제14호
지방권력 비리와 개선방안
이상원 뉴스민 기자 12월 23일 대구의 관문, 동대구역 광장에 밀짚모자를 쓴 채 볏단을 한아름 품에 안은 박정희 동상이 세워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3월 동상 건립 필요성을 강조한 후 10개월이 채 다 차기도 전에 이뤄진 속전속결 행정이다. 각계의 반대 목소리에도 강행된 제막식 행사에서 홍 시장은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까 저 사람들(시민단체)이 또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며 “신경 쓸 거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해 나가야 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 있다. 공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대구시만은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희에 대한 공과 평가는 뒤로 두고, 대구시가 10개월 만에 처리해 버린 박정희 동상 건립에는 ‘비리’가 없을까? 흔히 대중들은 ‘비리’라고 하면 큰 부정부패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비리’는 ‘올바른 이치나 도리에서 어그러짐’이다. 큰 부정부패의 여부를 떠나 이치나 도리에 들어맞느냐가 비리를 판별하는 기준이라는 의미다. 거대한 댐도 작은 구멍에서부터 무너진다는 걸 고려하면, 큰 부정부패는 작다고 무시해버린 이치나 도리가 쌓이고 쌓여 조직을 무너뜨리며 등장하고 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 동상도 비리 위에 세워졌다. 동상이 세워진 동대구역 광장의 법적 소유권은 국가철도공단이 보유하고 있다. 대구시는 광장의 관리권한을 보유 중인데, 광장의 준공이 이뤄지면 소유권도 대구시로 넘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동상이 세워진 12월 23일 현재 기준으론 소유권은 국가철도공단에 있고, 국가철도공단은 동상 설치를 앞두고 여러차례 대구시에 동상 건립에는 공단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문으로 알렸다. 대구시는 공단의 입장을 가볍게 무시했고, 급기야 공단은 12월 13일 법원에 대구시의 공사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하는데 이르렀다. 대구시는 국가철도공단이 가처분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12월 21일 동상 설치를 해버렸고, 23일 제막식까지 강행했다. 홍 시장은 어차피 곧 소유권도 대구시로 넘어오고, 관리권은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그런가? 올바른 이치와 도리에 기반한다면 홍 시장의 주장대로 곧 소유권이 넘어온 뒤에 동상을 세워도 하등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정치적 논란이야 상수로 두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둬 소유권마저 넘겨받은 후 건립했다면,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고, 공단에 가처분 신청의 빌미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로 인해 공단이 법정 다툼을 이어간다면 4억 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된 동상을 철거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4억 원의 세금을 날려버릴 수 있는 불안한 행정은 비리가 아닌가? 사실 지역권력의 비리라는 것이 이런 식이 적잖다. 공통점은 위임된 권한을 사유화한다는 점이다. 권한을 사유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친인척을 채용하거나, 측근의 사업체에 사업을 몰아주는 따위의 일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최근에는 이런 경우 되려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서 하는 경우가 많다. 공모를 거쳐서 뽑고 보니 친인척이라는 거고, 평가를 거쳐 선정한 업체가 측근의 사업체라는 식이다. 사유화된 권력 아래에선 공모나 평가라는 절차도 형식적인 것이 되기 일쑤다. 미심쩍은 결과를 과정의 정당성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박정희 동상 건립 문제처럼 절차대로만 하면 미심쩍을 것도 없는 일에서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거나 권력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대구시가 홍 시장 취임 후 2년 연속 개최한 공무원 골프대회 역시 그렇다. 홍 시장의 주장처럼 공무원도 골프를 칠 수 있다. 하지만 골프대회를 개최하면서 시민 세금을 쓰게 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 쓰임이 적절한지 평가 받아야 한다. 대구시는 이를 피하기 위해 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관련 자료 공개를 하지 않으려 버텼다. 그러다보니 잘못을 덮으려 또 다른 잘못은 더하는 악순환을 더하게 됐다. 기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도 그러한 악순환의 결과다. 법원은 대구시가 이미 관련 자료 비공개 결정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한 차례 받은 상황에서 반복해 비공개 하는 건 “불법행위”라고 판단하면서 대구시가 기자에게 100만 원을 손해배상하도록 판결했다. 한 해 10조 원 안팎을 쓰는 대구시에게 100만 원은 적은 돈이지만, 그 돈을 세금이 아니라 본인들 지갑에서 꺼내게 만들었다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대구시는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추가적인 소송 비용도 세금으로 지출한다. 이것은 비리가 아닌가? 이보다 앞서 대구시는 대구퀴어축제 조직위원회에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수년 동안 평화롭게 대구의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던 축제를 지난해 홍 시장이 못하도록 막아서면서 생긴 일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안다는 홍 시장이 직접 나와서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막아섰다. 공무원 수 백 명을 투입해 행정대집행도 하려고 했다. 그 결과 법원은 홍 시장의 중과실이 인정된다면서 700만 원을 대구시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것은 비리가 아닌가? 앞서 나열한 대구시 사례는 모두 단체장 뜻을 관철하기 위해 기존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질서를 ‘악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바로잡고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법대로’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이 법을 악용하는 조치를 스스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의 신분은 헌법으로 보장되고, 공무원법에 따라 성실·청렴·품위유지 등의 의무가 부여된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대로 단체장의 부당한 지시는 이행하지 않는 것이 공무원의 의무이고, 그리될 때 본질적으로 권력의 비리를 사전에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현실에서 공무원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부당한 대우에 함께 싸워줄 노동조합이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2중, 3중으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각 지역에는 의회가 있다. 의원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집행기관의 권한 집행을 감시하고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다. 공무원에 대한 부적절한 지시도 이 과정에서 걸러지고, 견제되어야 한다. 다만, 대구와 경북은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이 동일한 정치 집단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보다 서로가 서로의 문제점을 눈감아주기 바쁜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남은 건 언론의 역할이다.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이들의 전횡을 감시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각 행정기관에 출입하는데 있어 언론인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기자실 등 일정한 배려도 제공 받는 것은 그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물론, 각 행정기관의 기대는 그것이 아니긴 하다. 권력의 장점만을 과대해 알리고, 단점은 덮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언론을 ‘마사지’한다. 기자실과 같은 배려는 어쩌면 나쁜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대구시가 홍 시장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하는 대구MBC에 기자실 출입을 금지시킨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 탓에 적지 않은 언론이 권력의 포섭을 거부하지 않는다. 권력의 무릎 위에 올라타 꼬리를 흔드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권력을 지키는 경비견 역할을 자처하는 언론도 있다. 감시견 역할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강아지나 경비견 역할을 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오히려 확실한 지원을 담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개선방안이라는 게 뚜렷하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니, 모두가 개선방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방안이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의원은 의원대로, 기자는 기자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다하면 되는 일인데, 그것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다종다양하게 있을 뿐이다. 다종다양해서 그 이유를 제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다만, 그 이유를 상쇄하고도 남을 또 다른 권력이 작동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바로 시민 권력의 작동이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 역할을 방기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민 권력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면 된다. 분투하는 개개인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다고 말해줄 수도 있다. 그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시민 권력이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분투하는 개인들의 역할이 더 빛을 발할 것이다.
|
|
이전글 | [14호]한국어촌어항공단 소개 및 반부패·청렴 활동 |
다음글 | [14호]OECD 가이드라인 중 반부패 분야 동향 및 시사점 |
번호 | 제목 | 작성일 | 조회 |
---|---|---|---|
290 |
[사진/동영상] 2024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발표 기자회견 ![]() |
2025-02-11 | 9 |
289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문민 국방 장관이 필요하다. | 2024-12-31 | 241 |
288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한국어촌어항공단 소개 및 반부패·청렴 활동 | 2024-12-31 | 197 |
287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지방권력 비리와 개선방안 | 2024-12-31 | 208 |
286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OECD 가이드라인 중 반부패 분야 동향 및 시사점 | 2024-12-31 | 259 |
285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4호]잘못 바로잡아야 청렴사회 가능 | 2024-12-31 | 307 |
284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3호]기업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제도 | 2024-09-30 | 519 |
283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3호]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소개 | 2024-09-30 | 468 |
282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3호]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유권해석 사례와 판례 | 2024-09-30 | 561 |
281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3호]금융권 내부통제 실패에 관한 소고 | 2024-09-30 | 443 |
280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3호]국민권익위원회의 위상, 그리고 독립성, 정치적 중립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 | 2024-09-30 | 412 |
279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2호]청렴옴부즈만 활동과 과제 | 2024-06-28 | 685 |
278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2호]한국해양진흥공사 소개 | 2024-06-28 | 705 |
277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2호]공정거래 자율준수 제도 법시행의 의미 | 2024-06-28 | 645 |
276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2호]‘트로이 목마전술; 국방예산 투명성 제고’보고서 분석 | 2024-06-28 | 567 |
275 | [TI-Korea Forum 뉴스레터] [12호]부패와 청렴도 : 모든 시선이 대통령에게로 집중 | 2024-06-28 | 746 |
274 | [사진/동영상] TI-Korea Forum 2024년 제1차 워크숍 | 2024-06-03 | 421 |
273 | [사진/동영상] TI-Korea Forum 2023년 제2차 워크숍 | 2024-06-03 | 382 |
272 | [사진/동영상] TI-Korea Forum 2023년 제1차 워크숍 | 2024-06-03 | 398 |
271 | [사진/동영상] TI-Korea Forum 2022년 제3차 워크숍 | 2024-06-03 | 386 |